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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고장 함양에서

 

남계서원 (藍溪書院 )청계서원 (靑溪書院)

 

 

 

 

 

남계서원 (藍溪書院 )

 

남계서원이 위치한 함양 땅은 예로부터 '좌안동 우함양'이라 하여, 한양에서 볼 때
낙동강 왼쪽인 안동과 오른쪽인 함양은
모두 훌륭한 인물을 배출해내어 학문과 문벌에서 손꼽히던 고을들이다.


안동이 퇴계 이황으로 유명하다면,
함양은 남계서원에 모신 정여창으로 유명한 곳이다. 
 
남계서원(灆溪書院)은 1552년(명종 7년)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었고,
1566년(명종 21년)에 '남계(灆溪)'라는 이름으로 사액되었다. 
 
'남계'는 서원 곁에 흐르는 시내 이름으로,
서원은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소실된 뒤 나촌(羅村)으로 터를 옮겼다가,
1612년(선조 43) 옛 터인 현재의 위치에 다시 옮겨 중건되었다.  
 
이곳은 구릉을 등진 지형에 위치하고 있다.
서원 앞으로는 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계천이 흐르고,
그 앞 넓은 들판 너머로 안산(案山)인 백암산이 서원을 마주 보고 있다.
또한 다른 서원에서는 보기 드문 연지가
동재의 애련헌, 서재의 영매헌 남쪽에 각각 하나씩 조성되어 있다. 
 
남계서원은 풍기 소수서원, 해주 문헌서원에 이어 창건된 아주 오래된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서원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이 건물 배치에 일정한 형식을 갖추지 못한 것과 달리
남계서원은 서원의 제향 공간에 속하는 건물들은 서원 영역 뒤쪽에 자리 잡고,

강학공간에 속하는 건물들은 서원 영역 앞쪽에 자리 잡은
조선시대 서원 건축의 초기 배치 형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서원이다. 

 

 


 

 

 

 

 

 

 

 

 

 

 

 

 

 

 

 

 

 

 

 

 

 

 

 

 

 

 

 

 

 

 

 

 

 

 

 

 

 

 

 

 

 

 

 

 

 

 

 

 

 

 

 

 

 

 

 

 

 

 

 

 

 

 

 

 

청계서원 靑溪書院

 

조선 연산군 때 학자인 문민공 김일손(1464∼1498)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김일손은 김종직의 제자로서

그의 스승을 비롯한 영남학파 학자들과 함께 조의제문사건에 연루되어 무오사화로 희생되었다.

글에 뛰어났으며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비판하였다.

 연산군 1년(1495)에는 ‘청계정사’를 세워 유생을 가르쳤고, 광무 10년(1905) 유림들이 그 터에 유허비를 세웠다.

그 뒤 1915년에 건물을 원래 모습으로 고쳐 청계서원이라 하였다.

구경재와 동재, 서재, 홍남문, 솟을삼문 등의 건물이 남아 있고,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2016.08.13

함양에서

 

김상조와 공미영이 눈으로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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