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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성 광저우근교여행-01

 

<카이핑 금강리 조루군 >

 

 

 

 

금강리 조루군


담강(潭江) 서안의 평야지역에 위치한 촌락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개평시(開平市) 현강진(蜆岡鎮)에 속한다.


청나라 도광(1875 ~ 1908)시기에

 미국과 캐나다에 흩어져 살았던 황()씨 일가가 이곳에 마을을 세웠다.

 마을 앞쪽에 위치한 금강(錦江)에서 이름을 따서 금강리라 하였다.


황씨일가는

이 마을을 상당히 계획적으로 건설하였는데,

 황이계(黃貽桂)라는 인물이 마을의 설계를 담당했다.


그는 길의 폭과 위치를 미리 정하여 건축물의 면적을 획일화 했고,

건물의 높이도 6m로 제한한 후 사람들을 입주시켰다.


마을 뒤 쪽에는

승봉루(升峰樓), 금강루(錦江樓), 서석루(瑞石樓)의 조루 세 채가 건설되어 있다.


세 채의 조루 중에서 금강루(錦江樓)는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했던 중루(衆樓)였다.

 중루는 위급상황 발생 시 마을사람들이 대피하여 함께 사용하는 조루이다.


 중화민국 7년인 1918,

마을사람들이 자본을 모아 건설하였으며, 높이는 17.36m이다.

 5층으로 되어 있으며 건물 정상에는 평대(平台)가 있고, 철근과 콘크리트를 재료로 사용하였다.


방어와 대피를 위한 건물이기 때문에

 화려한 치장은 적은 편이며작은 창문이 달려있고, 곳곳에 총안(銃眼)이 만들어져 있다

 

 

 

 

 

 

 

 

 

 

 

 

 

 

 

가장 멋진 조루로 평가받는 서석루

 

 

 

 

 

 

 

 

 

 

 

 

 

 

 

 

 

 

 

금강리 골목풍경  

 

 

 

 

 

 

 

 

 

 

 

 

 

 

 

 

 

 

 

 

 

 

 

 

 

 

 

 

 

 

 

 

 

 

 

 

 

 

 

 

 

 

 

 

 

 

 

 

 

 

 

 

 

 

 

 

 

 

 

 

 

 

 

 

<바로크양식의 기둥들>  

 

홍콩에서 금융업과 약재상으로 거부가 된 황벽수(黃璧秀)가 지은 조루(碉樓)이다.

개봉제일루(開平第一樓)”의 명성을 가지고 있다.

황벽수는 개평에 살고 있던 부모와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홍콩달러 3만 불을 들여 이 건물을 지었다.

중화민국 12년부터 14년인 1923년부터 1925년까지 건설되었다.


금강루(錦江樓)의 우측에 위치해 있는데,

세 채의 조루가 나란히 건설된 것은 아마도 남은 부지가 이곳뿐이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서석루는 황벽수의 조카인 황자남(黃滋南)이 설계한 것으로

건물에 사용된 콘크리트와 철재, 목재와 유리 등은 모두 홍콩을 통해 수입되었다.


 건물의 이름인 서석(瑞石)

상서로운 돌이라는 뜻으로 황벽수의 ()”자를 풀어쓴 것이라는 설과,

황벽수의 호가 서석(瑞石)”이어서 서석루라 하였다는 설, 두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건물의 이름은 7층에 만들어진 회조(灰雕)에 쓰여 있는데

광주 육탑사(六榕寺)의 주지이자 유명한 서법가인 철선대사(鐵禪大師)가 쓴 것이라고 한다.

 

 


 

 

 

 

 

 

 

 

 

 

 

 

 

 

 

서석루 

 

철근과 콘크리트로 건설된 서석루는

 면적이 92평방미터, 총 높이가 28.37m로 개평시의 조루 중에서 최고 수준이다.


 건물내부의 6층과 정상부의 3층을 포함하여 총 9층으로 건설되었다.

 1층은 접객실이며 2층에서 6층은 침실, 거실, 화장실, 주방 등이 갖춰진 생활공간이다.


6층부터가 서석루를 다른 건물들과 구별 짓게 하는 특징이 집약된 부분이다.

 6층의 외부에는 사방으로 돌출된 베란다가 건설되어 있으며,

베란다 난간에는 7층과 연결되는 32개의 바로크양식 기둥이 있다.

 두 기둥을 연결하는 상부에는 각기 다른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중앙은 약간의 흘림장식이 들어간 사각, 그 좌우는 아치, 그 외곽은 삼각형으로 되어있다.

네 귀퉁이에 있는 조보(碉堡)의 기둥들은 아치의 형태로 연결되어 있는데,

균형미와 다양성을 강조한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7층은 평대(平台)라고 하는 반 개방형 옥상이다.

네 귀퉁이에는 6층에서부터 연결되어 올라온 조보의 지붕이 있다.

 조보의 지붕은 돔형이며 삼 면에 난 창문은 사각형으로 그 크기는 약간 작은 편이다.

이 정자들은 방어를 위한 것으로 적을 감시하고, 총을 쏘기 위한 곳이었다.

 7층 중앙에는 조상들의 신위(神位)를 모셔둔 감실이 있다.


감실은 나무로 제작되었으며 벽 안쪽으로 매립된 형식을 하고 있다.

규모가 크거나 화려한 모습은 아니고, 약간의 도안과 대련이 쓰여진 담담한 모습이다.

백세기창(百世其昌)”, “금옥만당(金玉滿堂)”의 글귀가 감실에 새겨져 있다.


황벽수와 그의 가족들은 이곳에서 조상들에게 가정의 안녕과 후손들의 번창을 빌었을 것이다.

감실 우측의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8층에 오를 수 있다.

 8층은 이탈리아식 탑정(塔亭)으로 8각형이며 각 창문에는 색을 넣은 창문이 4면씩 있다.

창문의 바깥쪽에는 쇠로된 창살이 설치되어 있는데,

다이아몬드 형태로 된 창살 역시 디자인을 고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가장 꼭대기 층인 9층은 8층에서 나무계단으로 연결되며,

공간적 제약 때문에 특별한 시설은 없고, 8면에 아주 작은 창들이 나있을 뿐이다.  

 

 

 

 

 

 

 

 

 

 

 

 

 

 

 

 

 

 

 

 

 

 

 

 

 

 

카이핑 금강리 조루군

2016-07-07

김상조와 공미영이 눈으로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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