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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281호로.
조선시대의 재상 황희가 남원에 유배가서
1418년 현재보다 규모가 작은 누를 지어 광통루(廣通樓)라 했는데,
1434년 남원부사 민여공(閔汝恭)이 증축했고,
1444년(세종 26) 전라관찰사 정인지(鄭麟趾)에 의해서 광한루라 불리게 되었다.

 

광한루란 말은
달 속의 선녀가 사는 월궁의 이름인 광한전(廣寒殿)의 '광한청허루'(廣寒淸虛樓)에서 따온 것이다.

1461년 신임부사인 장의국(張義國)이
요천강(蓼川江) 물을 끌어다 연못을 조성하고
4개의 홍예로 구성된 오작교를 화강암과 강돌로 축조하여 월궁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584년 송강 정철에 의해 수리될 때
봉래·방장·영주의 삼신산(三神山)을 연못 속에 축조하므로
광한루, 오작교와 더불어 월궁과 같은 선경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뒤 정유재란으로 전소된 것을
1638년(인조 16)에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렀고, 춘향전에 의해 많이 알려졌다.

인공정원 속에 건립된 대표적인 누인 광한루는
앞면 5칸, 옆면 4칸 팔작지붕의 이익공계(二翼工系) 다락집이다.

 

지금은 동쪽에 3칸의 부속건물이 붙어 있고,

북쪽에 팔작지붕을 중첩한 3칸의 계단을 두어 4면의 모습이 모두 약간씩 다르다.


 

 

 

 

 

 

 

 

 

 

 

 

 

 

 

 

 

 

 

 

 

 

 

 

 

 

 

 

 

 

 

 

 

 

 

 

 

 

 

 

 

 

 

 

 

 

 

 

 

 

 

 

 

 

 

 

 

 

 

 

 

 

 

 

 

 

 

 

 

 

 

 

 

 

 

 

 

 

 

 

 

 

 

 

 

 

 

 

 

 

 

 

 

 

 

 

 

 

 

 

 

 

 

 

 

 

 

 

 

2020.02.08
남원 광한루에서....

 

김상조와 공미영이 눈으로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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