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
산청 남사 예담촌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
지리산 초입에 자리잡은 남사예담촌은
안동하회마을과 더불어 경상도의 대표적인 전통한옥마을이다.
남사마을의 기본은 지리산이며,.
지리산은 '어리석은 사람(愚者)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智者)으로 변한다'고 해서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린다고 알려져 있다.
지리산 국립공원은 1967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국내 국립공원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남한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천왕봉(1,915.4미터)의 위세에 알맞게
주변에 화엄사 같은 대사찰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해 한국 남부의 문화권을 실질적으로 관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명산인 지리산 천왕봉에서
흘러나온 봉우리 니구산을 배경으로 한 마을이 과거에 여사촌으로 불린 남사마을이다.
풍수적으로 해석할 때 니구산이 암룡의 머리이고 당산이 숫룡의 머리로 서로 머리와 꼬리를 무는 쌍룡교구 형상을 하고 있으며,
아래를 휘감아 흐르는 사수천이 조화를 이루면서 넓은 들과 울창한 숲이 주위를 둘러친 천혜의 입지에 있다.
경남 하면 산청남사 마을이라고 할 정도로
옛날부터 그 명성이 자자했던 이 마을은 양반마을로 또한 전통한옥마을로 유명하다.
전통가옥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져가는 요즘 평범하게 살아 가면서 전통가옥을 보존하고,
일부러 찾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지리산 초입의 이 작은 마을이 유난히 정감 있고 고풍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해묵은 담장 너머 엿볼 수 있는 우리 조상들의 정서와 삶의 모습을 아직까지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남사마을을 대표하는 300년 된 회화나무이며,
마을 초입 이상택 고가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으며 X자형으로 몸을 포갠 것이 인상적이다.
나무 아래를 통과하면 부부가 백년해로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남사마을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서로 엇갈려 자라고 있는 회화나무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화나무는
우리 조상이 최고의 길상목으로 꼽은 나무이며 연원은 중국의 주나라 때부터다.
주나라 때
'삼괴구극'이라 해 조정에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고 그 아래에서 서로 마주보고 앉아 정사를 돌보았다고 한다.
한국도 이를 따라 삼정승에 해당하는 삼공 이 회화나무를 마주 보며 앉았고,
좌우에 각각 아홉 그루의 가시나무를 심어 조정의 대신들이 앉기도 했다.
이와 같이 회화나무를 우대한 이유는 회화나무에는 귀신이 접근지 못하고 좋은 기운이 모여든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조선에서는 회화나무를 매우 신성하게 여겨 아무 곳에나 함부로 심지 못하게 했다.
즉 선비의 집이나 서원, 궁궐에만 심을 수 있었으며.
또한 특별히 공이 많은 학자나 관리에게 왕이 상으로 내리기도 했다.
특히 집안에 급제자가 생기거나 벼슬을 하면 집 주위에 회화나무를 심었다.
따라서 회화나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과거 급제자가 많았고 벼슬아치들이 많이 살았다는 반증이다.
이씨고가의 대문은 북쪽을 향해 조금 낮게 만들었는데,
왕이 있는 방향으로 머리를 숙여서 충성심을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한다.
이씨고가
남사마을에서 일가를 이루었던 성주 이씨 가문에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보물 제1294호이자 가보가 있다.
조선 개국 때 태조가 공을 세운 정무공 이제에게 내린 「이제개국공신교서」다.
이제는 이성계의 셋째 딸 경순공주의 남편이자
정몽주 격살에 참여한 개국 일등공신으로 책록, 흥안군에 봉해졌으며 의흥친군위절제사가 되었다.
이제의 아버지 이조년(1269~1343)은 한국인이라면 거의 외우고 있을 「다정가」의 작가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데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 잠 못 들어 하노라."
최씨고가 입구
최씨고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17호로 지정된 최씨고가는 1920년에 지어졌으며
3겹으로 된 사랑채 지붕이 유명하다. 부농이었던 주인의 상황을 말해주듯 집안 위세를 과시하는 화려한 모양새를 강조한다.
전통적인 남부 지방의 사대부 한옥임에도 곳곳에 일제 강점기에 물밀듯이 들어온 실용적인 구조를 도입해
한옥 특유의 안정적이고 소박한 멋은 없지만 당대의 반가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다.
최씨고가는 부농이었던 주인의 상황을 말해주듯 화려한 모양새를 강조한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로 수령이 약 600~700년으로 추정된다고한다
. 전형적인 반시(납작감)로 산청 곶감의 원종이기도 하며 현재에도 감이 열린다.
하씨고가 안에 있는데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이 7세 때 심었다고 한다.
사양정사는
연일 정씨의 사랑채이자 위패를 모신 재실인 사양정사는 사수천의 남쪽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사수(泗水)란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둥성 취푸에 있는 강 이름으로,
공자를 흠모하는 뜻에서 남사마을 뒤를 감싸고 있는 개울을 사수라고 불렀다.
연일 정씨는 조선 시대 사육신 사건의 주역인 정몽주의 후손이지만,
남사마을에서의 토대는 구한말 유학자인
계제 정제용(1865~1907)의 아들 정덕영과 장손 정정화가 남사마을로 이전한 후부터 쌓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선친을 추모하기 위해 1920년대에 거대한 집을 마련했는데 이것이 사양정사다.
어느 곳보다 돌담장과 감나무가 잘 어우러진 골목을 돌면 보이는 사랑채가 그야말로 당당하다.
예담촌 남사마을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양정사는 750㎡의 대지에 본채와 대문채 2동으로 구성되었다.
100년된 배롱나무
하씨고가의 감나무
우리나라에서 가장오래된 감나무라고합니다.
원정매
약 700년 된 매화나무이며. 역시 하씨고가에 있고
고려 말의 문신 원정공 하즙(하연의 증조할아버지)이 심어 '원정매'라고 부른다.
이 마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한 고관들이 심은 매화나무가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 원정매가 가장 기품 있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아쉽게도 원래 고목은 고사해 시멘트로 원형을 만들었지만
주위로 새로이 가지가 내려 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곁 마당에는 후대에 심은 것이지만
제법 가지가 실하며 2세목으로 추정되는 홍매가 그득하다. 비석에 적혀 있는 영매 시는 다음과 같다
"집 앞에 일찍 심은 한 그루 매화
섣달 찬 겨울에도 아리따운 꽃망울 나를 위해 피었네.
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 피우고 앉았으니
한 점 티끌도 오는 것이 없더라."
고향가는길에 남사예담촌을 다녀왔습니다.
남사예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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